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용여(用汝), 호는 남애(南厓). 성세벽(成世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희인(成喜寅)이고, 아버지는 성찬(成澯)이며, 어머니는 옥산장씨(玉山張氏)로 장위삼(張緯三)의 딸이다.
1762년(영조 38)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 1768년에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에 임명되었으며, 1771년 봉상시직장(奉常寺直長)에 재임하다가 부모의 병간호를 위하여 사직하였다. 이듬해에 다시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제수되었다.
이어 예조좌랑을 거쳐 1778년(정조 2) 결성현감(結城縣監)에 부임하였다. 그 뒤 성균관전적·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역임한 뒤 강진현감에 재임 중 무고(誣告)를 당하여 공주에 유배되었다가, 1794년 풀려났다. 1811년(순조 11) 호군(護軍)에 올랐으며, 1900년(광무 4) 내부협판(內部協辦)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남애일고(南厓逸稿)』 2권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