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성주간 30번 국도에서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성주대교를 지나 북쪽으로 뻗은 304번 지방도로 변에 위치하는 선남면 용신리 ‘용대골’과 ‘새터’마을 동편 야산(해발 63m) 일대에 삼국시대 소형 고분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이 중 용신공단 조성을 위한 지표조사 결과, 사업지구 내에서 2기의 폐고분이 확인되어 1993년대구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제1호분은 동쪽을 튼 횡구식석실분(橫口式石室墳)으로 1매의 개석만이 석실 안으로 도괴되어 있고 나머지 개석은 유실되었다. 봉토는 높이 170cm, 직경 610cm이다. 석실의 장축길이는 230cm, 단축길이는 190cm이다. 석실 안으로는 이미 바닥층까지 완전히 도굴되어 유구의 대부분이 파괴된 상태이다.
석실의 평면구조는 동서가 약간 긴 말각장방형이며 바닥은 얇은 판상석을 면맞춤하였다. 석실 내에서는 대각부가 결실된 장경호, 장경호뚜껑, 손칼편, 개합, 방추차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제2호분은 제1호분의 남서쪽 2m 거리에 인접해 있다. 봉토는 높이가 50cm 정도만 남아 있고 직경은 약 340cm이다. 내부구조는 소형 석곽분(石槨墳)이다. 석곽의 장축은 능선과 같은 동서방향이다. 석곽의 길이는 장축 195cm, 단축 65cm이다.
벽석은 대부분 유실되어 남쪽과 동쪽 벽 일부만 남아 있다. 바닥시설은 제1호분과 같이 얇은 판상석 수매로 상면을 맞추어 놓았다. 석곽 내에서는 굽다리접시 4점, 토기잔 1점, 철창편 1점 등이 출토되었다.
용신리고분군 일대는 낙동강을 끼고 고대문화 집단이 모여 산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의 성주 성산리고분군, 월항리 수죽고분군의 집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출토유물들은 소성상태가 양호한 편이 아니며, 그릇 표면에 문양을 시문한 예가 없고 다분히 형식적인 침선만을 표현한 것들로서 6세기 중반에서 말엽의 것들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