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항(臨院港)에서 서쪽 산의 능선을 타고 2㎞ 올라간 지점의 소공령(召公嶺)에 돌을 모아 돋아놓은 대이다. 소공대는 1423년(세종 5)에 황희(黃喜)를 중국의 소공(召公)과 같은 정도의 은인이라 하여 백성들이 만든 것이다.
당시에 관동지방에 식량이 크게 부족하여 백성들이 굶어죽게 되었는데 당시 관찰사의 비행이 많아 이를 바로잡고자 황희가 부임하여 백성들을 잘 구호하고 이 고개에서 쉬었다 한다.
1516년(중종 11) 황희의 현손(玄孫: 4대손) 황맹헌(黃孟獻)이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소공대의 사실을 적은 소공대비(召公臺碑)를 세웠으나 훗날 비바람에 쓰러져 부러지고 말았다. 현재의 소공대비는 1578년(선조 11) 황희의 6대손 황정식(黃廷式)이 삼척부사에 임명되었을 때 옛 터에 다시 건립한 것이다. 소공령은 현재의 국도에서는 떨어져 있지만, 옛날에는 이 고개를 넘어야만 인마(人馬)가 내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와현(瓦峴)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