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홍씨 묘사(廟祠)인 영사재(永思齋) 옆에 있다. 본래 최응현(崔應賢)이 살던 옛 집터로, 1638년(인조 16)홍응부(洪應溥)가 이곳에 집을 짓고 송라정(松蘿亭)이라 하였다.
그 뒤 1861년(철종 12) 후손 홍병각(洪秉珏)·홍연섭(洪然燮) 등이 세덕사(世德祠)로 고치고 홍확(洪確)·홍연해(洪0x969e海) 등의 사당으로 제정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별묘(別廟)로 쓰다가 그 뒤 개축하면서 명칭을 애연정으로 바꾸었다.
1907년에 중수되었으며 후손 홍기섭(洪驥燮)이 중수기를, 이희수(李喜秀)가 서액을, 이계필(李啓泌)이 「애연기(僾然記)」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