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년(현종 1) 국자사업(國子司業)으로 과거에서 시무책을 제외한 시(詩)·부(賦)만을 시행하도록 건의하였으며, 이 해에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서숭(徐崧) 등 11명을 뽑았다. 이듬해 상서좌승(尙書左丞)이 되었고, 1014년 한림학사 승지(翰林學士承旨)가 된 뒤 1016년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올랐다. 문장에 능하여 충주 정토사(淨土寺)의 홍법국사실상탑비(弘法國師實相塔碑)와 지리산 지곡사(智谷寺)의 승려 혜월(慧月)과 진관(眞觀)의 비문을 지었으며 당대의 명필로 손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