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을 올렸다. 건물 앞면은 3칸이지만, 왼쪽 귀퉁이 기둥에서 오른쪽 귀퉁이 기둥까지의 길이는 21척밖에 되지 않는다.
건물은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처마 밑의 공포(栱包)가 3출목(出目)으로 과중하게 짜올려져 있다. 이것은 건물의 외관을 한층 더 장엄하게 꾸미려는 의도가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비해 건물 안의 공포는 2출목으로 줄었는데, 이것은 포개 쌓은 공포의 부피로 인해 천장의 공간 면적이 좁아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추정된다. 이러한 의도 때문에 대들보를 받치는 공포의 살미 끝부분은 보의 짜임새를 보강하는 짧은 부재인 보아지[樑奉]처럼 만들었고, 천장 네 귀퉁이의 귀살미와 그 좌우 살미의 끝부분이 길게 뻗어나온 것을 교차시켜 연결한 특이한 부재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건물 안의 바닥에는 마루가 깔려 있는데, 마루 가운데부분의 뒤쪽벽에는 불단(佛壇)이 놓였으며, 그 위에는 지붕 모양의 닫집이 걸려 있다. 단청은 부재의 끝부분에만 무늬를 놓아 그린 모루[毛老]단청인데, 색감은 호남 지역의 정서가 짙게 밴 명랑한 것으로 무늬도 아름답다. 절에서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영산전은 1639년(인조 17)에 처음 건립되었고, 1736년(영조 12)에 손질하여 고쳤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