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와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백경해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6년에 간행한 시문집.
목차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백경해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6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8권 4책. 목활자본. 1866년(고종 3) 증손 이행(彛行)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박문일(朴文一)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이행의 발문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있다.

권1∼7에 시 103수, 소(疏) 2편, 서(序) 7편, 제발(題跋) 8편, 기(記) 5편, 서(書) 40편, 제문 25편, 묘갈 3편, 잡저 32편, 잡지(雜識) 5편, 권8에 환해징비(宦海懲毖)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의 「의소(擬疏)」에서는 모든 사람이 갖춰야 할 사유(四維), 즉 예(禮)·의(義)·염(廉)·치(恥)가 위정자 층에서 지켜지지 않음을 지적하여 임금의 인상과 직급에 따른 균등 처우 개선 등 10개조에 걸친 시정책을 논하였다.

「대관서제인정정부서(代關西諸人呈政府書)」는 관서인을 대표하여 정부에 올린 글이다. 관서 지방은 지형적으로 호국(胡國)과 왜국(倭國)에 인접하여 있어서 빈번한 외침을 받아왔으며, 이 지방민을 천대하는 풍토로 등용의 길이 거의 막혀 있어 학문에 태만하고 생업에 불성실하여, 장차 정부를 불신하고 난신과 도적이 횡행할 염려가 있으니 이를 속히 시정할 것을 건의하는 내용이다.

「여종자종륜서(與從子宗倫書)」에서는 성혼한 조카에게 8잠(箴)을 제시하여 성인된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답박정랑사언서(答朴正郎思彦書)」는 1811년(순조 11)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났을 때, 저자의 형과 현인복(玄仁福) 등이 정주성을 급습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갔다는 내용을 담은 글로, 저자의 애국충정이 잘 나타나 있다.

잡저 가운데 「경명(鏡銘)」은 군자의 도를 거울에 비유하면서 사람도 자신의 과실을 솔직히 바라보아야 함을 지적한 글이다. 이밖에도 습성에 대한 논설인 「습설(習說)」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당시 국내의 정치·사회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참고 자료가 된다.

집필자
이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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