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궁(壽進宮)은 조선시대 후사가 없이 죽은 왕의 자녀 및 후궁 등의 제사를 관리하던 제사궁(祭祀宮)이다. 자리한 곳의 조선시대 행정구역은 한성부 중부 수진방으로, 예종의 둘째 아들인 제안대군의 궁가였다가 중종의 본궁이 되면서 수진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구된 뒤 효종의 비(妃)이자 숙종의 모후(母后)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명으로 후사 없는 대군 · 왕자 · 공주 · 옹주 · 후궁 등의 사판(祠版)에 대한 시향(時享)과 묘제(墓祭)를 전담하게 되었다.
수진궁은 내수사(內需司), 용동궁(龍洞宮), 어의궁(於義宮), 명례궁(明禮宮)과 더불어 중요하게 관리되던 궁가였다.
1907년(융희 1)에 궁내부령(宮內府令)에 의하여 궁의 업무를 담당하던 도장을 없애고 제실 재산 정리국 관제(帝室財産整理局官制)에 의하여 모든 재산이 제실 관리국으로 넘어가면서 1909년(융희 3)에 폐지되었다.
수진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 51번지 일대에 자리했던 궁가로 건물의 배치는 규장각 도서인 『가사(家舍)에 관한 조복문서(照覆文書)』 중 「수진궁급용동궁건물부속토지조사보고(壽進宮及龍洞宮建物附屬土地調査報告)」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