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 · )

주생활
유적
문화재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
이칭
이칭
송용억 가옥
유적/건물
건립 시기
1714년(숙종 40)
정면 칸수
사랑채[소대헌] 5칸|사당 2칸
측면 칸수
사랑채[소대헌] 2칸|사당 2칸
규모
건물 4동|토지 2,813㎡
소재지
대전광역시 대덕구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가민속문화재(2016년 08월 26일 지정)
소재지
대전광역시 대덕구 동춘당로 70 (송촌동, 대전 소대헌 호연재 고택)
내용 요약

대전 소대헌 · 호연재 고택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학자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가 1674년(현종 15) 분가하여 건립한 가옥으로,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가 1714년(숙종 40)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큰집 격인 동춘당 종택과 함께 한 집안의 가계 계승, 충청 지역 명문가 집안으로서의 면모를 찾을 수 있고, 조선 중기의 원형이 잘 남아 있어 지역적 특색을 알 수 있다.

정의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
건립 경위

대전 소대헌 · 호연재 고택은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宋炳夏)가 1674년 분가하여 건립한 가옥으로,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小大軒) 송요화(宋堯和)가 1714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형태와 특징

이 집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대전 회덕 동춘당(大田 懷德 同春堂)의 우측 후면에 있는데 안채와 큰사랑채, 작은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호연재(浩然齋), 큰사랑채는 소대헌(小大軒), 작은사랑채는 오숙재(寤宿齋)라고 부른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큰사랑채가 있고, 오른쪽에는 작은사랑채가 있다. 작은사랑채의 왼쪽에 나 있는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있다. 안채는 ‘ㄱ’자 형 평면에 사다리꼴 모양의 방형 주초를 놓고 방형기둥을 세운 다음 3량집으로 구성하였다. 안채는 최근에 대청에 유리덧문을 달아 원형이 변경되었다.

사랑채인 소대헌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우측 2칸은 통칸에 우물마루의 넓은 대청이 있으며, 그 옆에 툇마루가 달린 2칸 통칸의 온돌방이 있다. 그리고 방 사이에는 미닫이 문을 달았다. 온돌방 옆에 있는 1칸에는 앞 칸은 온돌방을 꾸미고 뒷 칸은 상부는 다락, 하부에는 함실이 있다.

안채 뒤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사당이 있는데, 안채는 내부에 위패를 봉안하고 건물 정면에 ‘송씨가위조호패(宋氏家位調號牌)’라는 판이 걸려 있다.

구조는 3벌대의 자연석 기단 위에 사다리꼴의 방형 주초 위에 방형기둥을 세우고, 주상부(柱上部)는 외부에서 보았을 때 직사각형이고 내부에서는 초각(草刻)을 한 연량(蓮樑)이 건물의 내외 방향으로 결구되어 있어 주1의 단부를 일부 보강하여 주고 있다.

지붕은 전후 평주 사이에 내고주를 세우고 대량과 주2을 걸고 대량 위에 주3를 세워, 내고주와 함께 주4을 받도록 하고 있다. 종량 위에는 맥연초각을 한 사다리꼴 대공을 설치하여 종도리와 함께 지붕의 하중을 받쳐주고 있으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룬다.

의의 및 평가

큰집 격인 2016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대전 동춘당 종택(大田 同春堂 宗宅)과 함께 한 집안의 가계 계승, 충청 지역의 명문가 후손 집안으로서의 면모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비교적 조선 중기의 원형이 잘 남아 있고, 살림집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대전에서 지역적 특색을 알 수 있는 민속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소유자였던 분의 이름을 붙여 송용억가옥(宋容億家屋)이란 이름으로 1989년 대전광역시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가 2016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승격,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기타 자료

「대전 소대헌과 호연재 고택」(중요민속문화재 지정고시문, 2016. 8. 26.)
「2016년도 제4차 문화재위원회-민속분과 회의록」(문화재청, 2016)
주석
주1

작은 들보의 하중을 받기 위하여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른 큰 들보.    우리말샘

주2

툇기둥과 안기둥에 얹는 짧은 보.    우리말샘

주3

들보 위에 세우는 짧은 기둥. 상량(上樑), 오량(五樑), 칠량(七樑) 따위를 받치고 있다.    우리말샘

주4

대들보 위의 동자기둥 또는 고주(高柱)에 얹히어 중도리와 마룻대를 받치는 들보.    우리말샘

집필자
정정남(㈜건축문헌고고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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