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군 ()

목차
고려시대사
제도
1277년(충렬왕 3) 경에 포도(捕盜) · 금난(禁亂)을 목적으로 설치한 군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1277년(충렬왕 3) 경에 포도(捕盜) · 금난(禁亂)을 목적으로 설치한 군대.
내용

그 기원은 고려 초의 순검군(巡檢軍), 무신집권기의 야별초(夜別抄)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보여진다. 임무는 순찰을 통해 도적을 잡기 위해 설치했으나 민간인들 사이의 분쟁, 마소도살 등 국내치안에 관한 모든 일을 담당하였다.

충렬왕 초기에 야간경비를 담당하기 위해 몽고제도를 모방하여 순마소(巡馬所)를 설치하였는데 나중에는 내료(內僚) 또는 문신까지 편입시켜 정치적 성격이 강한 금군(禁軍)의 임무를 겸하였고 출정군(出征軍)과 형옥을 다스리는 역할까지 담당하였다.

이 순마군으로부터 순군제가 발달하여 1316년(충숙왕 3)에는 지방의 중요한 곳에 33개의 순포(巡鋪)가 설치되어 순군의 사령부로서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가 나타나게 되었다. →순군만호부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여말선초(麗末鮮初) 선군연구(巡軍硏究)」(한우근, 『진단학보(震檀學報)』22, 196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