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사중(士中), 호는 송촌(松村).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의 5대손이며, 신영(申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석정(申碩汀)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서윤 신단(申端)이며, 어머니는 우의정 정순붕(鄭順朋)의 딸이다.
1585년(선조 18)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1600년 성균관 유생의 소두(疏頭)가 되어 승려에게 관작제수를 하지 말 것과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승장(僧將) 의엄(義嚴)의 횡포를 다스릴 것을 건의하였다.
그 뒤 성균관의 추천으로 의금부도사·사옹원직장(司饔院直長)·전생시주부(典牲署主簿)·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고, 1604년 연기현감이 되어 혜정(惠政)을 베풀었다. 다음 해에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1609년(광해군 1) 군기시정(軍器寺正)으로 『선조실록(宣祖實錄)』 편수관이 되었다. 이후 사헌부의 지평(持平)·장령(掌令)·집의(執義),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시강원보덕, 동부승지 등을 지냈으며, 1614년 홍주목사 재직시에 죽었다.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