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좌의정 신개(申槩)의 후손이다.
무과를 거쳐 관직에 나와 1728년(영조 4) 영변현감이 되었으나, 재상가(宰相家)에 뇌물을 바치려 하였던 일이 조정에 알려져 파직되었으며, 얼마 뒤 재기용되어 남양군수를 지냈다.
1734년 경상도우병사를 거쳐 함경남도병마사가 되었으며, 이 때 단천의 진보(鎭保)를 없애고, 화봉산(華峯山)의 봉수를 옮길 것을 주장하는 계문(啓文)을 올려 함경도의 군비를 재정비하는 데 기여하였다.
1740년 다시 경상도우병사가 되었으며, 2년 뒤 황해수사로 전임되었고, 1749년 황해병사로 재임 중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