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제이(濟而). 신숙주의 현손이며, 할아버지는 신항(申沆)이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문과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북쪽으로 피난가다가 단천(端川)에 이르러 군수 강찬(姜燦)을 권유하여 의병을 일으켜 격문(檄文)을 지었다. 또 임해군(臨海君)·순화군(順和君) 두 왕자가 회령(會寧)에서 가토 기요마[加藤淸正]에게 포로가 되자, 이를 구출하려고 일족인 신석린(申石潾)과 함께 정현룡(鄭見龍) 등을 권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그 뒤 북평사 정문부(鄭文孚)를 대장으로 삼고, 자신은 그 휘하에 종군하여 함경도 곳곳에서 왜적을 격파하여 6진(六鎭)을 모두 수복하였다. 이 공으로 인하여 5품직을 제수받았지만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많은 경서를 섭렵하였는데, 문장이 풍부하였다. 특히 고문(古文)과 사륙변려문(四六騈驪文)에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