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낙천(樂天)·낙옹(樂翁), 호는 귤우정(橘宇亭). 신경종(申敬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랑 신수복(申守福)이고, 아버지는 감찰 신영화(申永和)이며, 어머니는 좌의정 허침(許琛)의 딸이다.
1501년(연산군 7)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15년(중종 10)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곧 성균관학유가 되었는데, 왕이 유능한 인재를 탁용(擢用)하려 하자 병조판서 고형산(高荊山)이 변방판관의 적임자로 추천하였다.
1517년에 이조판서 남곤(南袞) 등이 신변을 정자 유용(柳庸)과 함께 재능이 있다 하여 6품직에 승급시켰다. 1519년에 지평을 거쳐 황해도도사가 되었으나 사직하고 지평(砥平)에 일시 은거하였다가 병조좌랑이 되었는데,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되어 다시 지평에 은거하였다.
1521년에 동생 생원 신철(申哲)이 송사련(宋祀連)의 무고에 의하여 일어난 신사무옥에 연루되었을 때, 지란불고죄(知亂不告罪)와 교결역신죄(交結逆臣罪)의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였다. 후일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지평의 운계서원(雲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정신(貞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