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으로 분량은 7책이며, 현재 조종운의 14세손 조용진(趙鏞珍)씨가 소장하고 있다. 편찬자 조종운의 자는 백농(伯農), 호는 송창(松窓), 본관은 풍양이다. 이조참의에 추증된 조척(趙滌)의 아들로 조부 조수륜(趙守倫)은 이이 · 성혼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행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숙부 조속(趙涑)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조속은 학식과 서화에 대한 재능을 바탕으로 당시 사림에서 지명도가 높은 인물이었다. 더욱이 그는 해박한 보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선대와 그 외가의 사적을 정리한 『사선록(思先錄)』을 남겼는데, 이 저서는 조종운이 『씨족원류』를 저술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조종운이 씨족원류를 저술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실전한 선대의 세계를 회복하는데 있었다. 이런 계기 속에서 그는 다른 성관의 계보에까지 천착하게 되면서 통합보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씨족원류를 남기게 되었다.
씨족원류 이전에도 양성지(梁誠之)의 『해동성씨록(海東姓氏錄)』과 같은 통합보가 있었지만 체제와 범위에 있어 씨족원류에 비견될 수 없었다. 씨족원류에는 17세기 중반까지의 조선의 대성 · 망족을 망라되어 있는데, 전주이씨를 위시하여 대략 540여개 성관이 수록되어 있다.
성관의 기재 순서는 종성인 전주이씨를 필두로 하여 이씨 · 박씨 · 김씨 · 정씨 · 조씨 · 정씨 · 송씨 · 안씨 · 왕씨 · 허씨 · 남씨…순이며, 각 성씨의 기재 순서는 당시의 가격(家格)과 일정한 관련성을 지니면서 망족일수록 앞에 수록하였다.
각 성관의 세계를 기록함에 있어 맨 모두에 큰 글씨로 성관을 표기한 다음 그 아래에 세주 형태로 관향의 별칭 또는 이칭을 기록하였다. 대략 한 면에 족도 형식으로 6-7대가 수록되어 있고, 보도(譜圖)는 구획되어 있지 않다. 이는 보도가 정연하게 구획된 후기의 『만가보(萬家譜)』, 『청구씨보(靑邱氏譜)』와는 크게 다른 점이다.
자녀는 대부분 출생순에 따라 수록되어 있고, 수록 대수에 있어서도 본성과 외파의 차이가 거의 없다. 각 인물의 주기(註記)는 개인에 따라 상략이 심한 편으로 비교적 현달한 인물은 관직, 묘소위치, 배위사항이 기재되어 있고, 그 나머지는 관직만 간단하게 기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첩될 경우에는 초첩의 맨 하단에 견하(見下)라고 표기했을 뿐 자표(字標)는 매겨져 있지 않다. 제한된 지면에 많은 가계를 수록하느라 체제가 정연하지 못하고 각 인물의 주기가 지나치게 세필(細筆)로 쓰여진 단점은 있지만 파악이 가능한 가계를 최대한 수렴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매우 크다.
더욱이 이 씨족원류는 통합보의 전형이 되어 백씨통보(百氏通譜), 만가보(萬家譜), 청구씨보(靑邱氏譜), 계행보(系行譜) 등 제 통합보의 출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