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박씨 족보(숭정임인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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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2년(현종 3) 밀양박씨 규정공 14세손 박승건(朴承健)이 숭정 임인년에 간행한 밀양박씨의 족보.
내용 요약

밀양박씨 족보(숭정임인보)는 밀양박씨 규정공 14세손 박승건이 1662년(현종 3)에 간행한 밀양박씨의 족보이다. 분량은 1책이며, 표제는 “밀양박씨족보”, 판심제는 “밀양세보”이다. 체제는 표지, 신라팔대군형제분봉연혁, 보도 상, 중, 하, 발문 순으로 되어 있다. 신라팔대군형제분봉연혁은 신라 경명왕의 8대군의 분봉 사실과 박씨의 분파 연혁을 표기하였다. 이 족보는 경신보의 미비점을 수정·보완한 개간본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또한 자녀 등록에 있어 선남후녀의 형태가 비교적 빨리 나타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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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662년(현종 3) 밀양박씨 규정공 14세손 박승건(朴承健)이 숭정 임인년에 간행한 밀양박씨의 족보.
내용

분량은 1책이며, 호남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표제는 “밀양박씨족보”, 판심제는 “밀양세보(密陽世譜)”이다. 크기는 반곽 가로 19.5㎝, 세로 24㎝이며, 유계(有界), 주쌍행(註雙行), 선장(線裝), 저지(楮紙)이다.

박승건의 발문에 따르면, 밀양박씨는 구보가 있었지만, 임란을 거치면서 전해지지 않자 박승건의 아버지 박안행(朴安行)이 동종의 합의를 거쳐 공홍도관찰사 박정현(의곡공)과 함께 밀창부원군 박승종(숙민공)의 도움을 받아 1620년(광해군 12 경신년)에 족보를 간행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경신보(庚申譜)였는데, 그 안에는 여러 후손들이 누락되는 등 미비점이 많아 박안행은 오랜 기간 교정 작업에 착수하여 원고를 정리하였으나 간행하지는 못했다.

이에 그 아들인 박승건이 호남에 도사로 부임하여 밀양박씨 외손이던 관찰사 이태연(李泰淵)의 전적인 협조를 받아 간행하게 되었고, 임인년에 발간하였다 하여 청나라 연호 숭정을 앞에 붙여 숭정임인보라 부른다. 이 족보는 사실상 경신보의 수정본이며, 따라서 원 편찬자는 박안행이라 할 수 있다.

체제는 표지(表紙), 신라팔대군형제분봉연혁(新羅八大君分封沿革), 보도(譜圖) 상 · 중 · 하, 발문(跋文)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의 우측에는 묵서(墨書)로 “강희 원년 임인에 간행했다(康熙元年壬寅刊)”라는 간기가 표기되어 있다.

신라팔대군형제분봉연혁은 신라 경명왕의 8대군의 분봉 사실과 이를 바탕으로 제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설을 약기한 것이다.

장자 밀성군(密城君)은 밀양박씨의 시조, 2자 사벌군(沙伐君)은 상주박씨의 시조, 3자 완산군(完山君)은 전주박씨의 시조, 4자 죽성군(竹城君)은 죽산박씨의 시조, 5자 속함군(速咸君)은 함양박씨의 시조, 6자 강남군(江南君)은 순천박씨의 시조, 7자 고양군(高陽君)은 고령박씨의 시조, 8자 월성군(月城君)은 경주박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견해인 바 박씨의 분파연혁이라 할 수 있다.

보도는 6층 횡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 면은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자표(字標)가 매겨져 있다. 총 수록 대수는 16대로서 상에는 1대 박현(朴鉉: 司憲糾正)에서 6대까지, 중에는 6대에서 11대까지, 하에는 11대에서 16대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 족보는 1대 박현의 후손들을 최대한 수렴하고 있지만 박현의 현손 박강생(朴剛生)의 3자 의문(疑問) · 절문(切問) · 심문(審問) 계열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그 중에서도 절문→중손(仲孫:默齋)계열, 심문→원충(원충:判官) 계열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시기 다른 족보류와 마찬가지로 본손은 물론 외손 · 서자녀들까지도 수록되어 있다. 외손은 수록 대수에 있어 본손과 동일한 비중을 보이고 있으나 서자녀는 대체로 당대 또는 자녀대에 한정되고 있다. 다만 자녀의 등록 순서는 출생순이 아닌 철저히 선남후녀(先男後女)의 방식을 취하고 있어 이 시기 다른 족보와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각 인물의 주기는 개인에 따라 주1이 심한 편이다. 12대 이전 대수에는 크게 현달한 인물이면 자(字), 호(號), 생년(生年), 과거(科擧), 관직(官職), 졸년(卒年), 시호(諡號), 묘소 위치, 배위(配位)의 성관(姓貫)과 처부의 이름 등이 기재되었다.

그러나 그 이하 대수로는 비록 문과를 거쳐 고관을 지냈더라도 과거와 관직만 간단하게 기록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박계현(朴啓賢) · 박안세(朴安世) · 박승종(朴承宗) · 박자흥(朴自興) 등 극소수 인물에 한하여 졸년, 향년(享年), 묘소위치, 배위관계 등이 부기되어 있는 정도이다. 사위와 외손은 거의 대부분 본관(本貫)조차 표기하지 않았다.

이 족보는 경신보의 미비점을 수정 · 보완한 개간본이라는 점에서 일차적인 의의를 발견할 수 있고, 자녀 등록에 있어 선남후녀의 형태가 비교적 빨리 나타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경신보와의 상호 대비를 통해 차이점을 검토해 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의 하나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밀양박씨족보(密陽朴氏族譜)』(신유·임인본)
주석
주1

상세함과 간략함.    우리말샘

집필자
김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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