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안씨 족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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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신 안응창 등이 중심이 되어 1659년에 간행한 순흥안씨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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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순흥안씨족보』는 조선후기 문신 안응창 등이 중심이 되어 1659년에 간행한 순흥안씨의 족보이다. 총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판본이다. 순흥안씨 집안에서는 기해보로 칭해지는 족보로, 1546년에 간행된 초보인 병오보의 미비점을 수정·보완한 재간본이다. 경상감사를 포함한 영남 여러 군현의 수령으로 재직하던 안씨 외손들의 협조 속에 발행되었다. 판각을 맡은 각수 중에 인동·군위 등지의 승려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서지학적으로 중요하다. 순흥안씨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도입한 인물인 안유를 배출한 가문으로 고려말 이후 크게 번성한 집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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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 안응창 등이 중심이 되어 1659년에 간행한 순흥안씨의 족보.
내용

분량은 6권 3책이며, 판종은 목판본이다. 표제와 판심제 모두 “순흥안씨족보”이며, 집안에서는 이른바 기해보(己亥譜)로 칭해지고 있다. 크기는 미상이며, 서문과 범례는 항자수부정(行字數不定), 유계(有界), 주쌍행(註雙行), 선장(線裝), 저지(楮紙)이다. 체제는 표지, 서발문(또는 後識), 서사(書寫) · 인출기(印出記), 범례, 본문에 해당하는 보도(譜圖)로 구성되어 있다. 매 권두(卷頭)에 천자문의 자표(字標)를 부기되어 있어 열람에 매우 용이하다.

서발문 또는 후지는 모두 6건이다. 안위(安瑋)의 서문은 1546년(명종 1)에 간행된 병오보(丙午譜)의 서문이며, 이준(李埈)의 후지(1614)는 성수침(成守琛) 친필의 병오보 서문에 대한 후지이다. 안현(安玹)과 안승종(安承宗)의 발문 역시 병오보 발문이다. 즉 이 4건의 서발문은 구서발(舊序跋)이며, 기축보의 서발문은 1659년에 작성된 안응창의 서문과 안도징(安道徵)의 발문 뿐이다. 이들 서발문에 따르면, 순흥안씨는 1546년 안순(安純) · 안정(安珽) · 안승종(安承宗)의 초보를 바탕으로 안동에서 목판으로 족보를 간행한 바 있었는데, 이것이 초간보인 병오보이다. 그러나 이 또한 미비점이 많아 안위(安瑋)가 수정본을 만들었으나 간행되지 못하고 현재 초본만 전해지고 있다. 이후 그의 손자 안응창이 의성현감으로 부임하여 동종인사와 경상감사를 포함한 영남 여러 군현의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던 안씨 외손들의 협조 속에 1659년에 간행한 족보가 바로 본 기해보인데, 순흥안씨족보로서는 재간본에 해당한다. 서사 · 인출기는 서사 · 판각 · 인출을 당당한 사람들의 명단인데, 서사는 주로 영리(營吏)가 당담했고, 각수(刻手) 중에는 인동(仁同) · 군위(軍威) 등지의 승려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런 기록은 다른 족보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드문 예로서 서지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범례는 모두 5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순흥안씨는 우리 나라에 성리학을 도입한 인물로 알려진 안유를 배출한 가문으로 고려말 이래로 문호가 크게 번성하였다. 물론 세조연간 단종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참변을 당하기도 했으나 일부 파계는 조선시대에도 현달을 구가하였다. 일반적으로 순흥안씨는 크게 3개의 파로 분파되어 있었는데, 본 족보 역시도 3파 체제에 준하여 편집되어 있다. 1파는 시조 안자미(安子美: 保勝將軍)의 증손 안유(安裕:文成公) 계열로서 1책(권1∼2)에 수록되어 있고, 2파는 역시 시조의 증손 안성철(安成哲:檢校軍器監) 계열로서 2책(권3∼4)에 수록되어 있으며, 3파는 시조의 현손 안석(安碩:追封密直提學) 계열로서 3책(권5∼6)에 수록되어 있다. 자손의 수록대수는 시조로부터 대략 16대 정도이나 각 파조(안유 · 안성철 · 안석)를 기준으로 대수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약 12∼15대가 수록된 셈이다. 자표(字標)는 세 파조의 7대손과 12대손을 기점으로 변경되었는데, 예를 들어 1파의 경우 본손이면 “안유칠대손(安裕七代孫)”, 외손이면 “안유칠대외손(安裕七代外孫)”이라 표기하였다.

보도(譜圖)는 6층 횡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 면에 천자문의 순서대로 자표가 매겨져 있다. 수록 대수에 있어 내외손의 차별이 전혀 없으며, 자녀도 출생순에 따라 등록되어 있어 17세기 이전 족보의 형태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서자녀는 이름 위에 서(庶), 계후한 경우는 계자(繼子)라 표기하여 적서와 출계를 명기하였는데, 이런 경향은 이 시기 다른 족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각 인물의 주기는 전반적으로 소략한 편이다. 시조로부터 약 5대까지는 과거(科擧), 관직(官職), 시호(諡號), 봉호(封號), 묘소(墓所) 위치, 배위(配位)의 성관(姓貫), 처부의 이름, 묘소 위치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그 이하로는 대부분 이름과 관직만 간단하게 기록하였다. 사위의 경우는 대부분 본관조차 기록하지 않아 인적사항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이처럼 주기를 간단하게 처리한 것은 제한된 분량 속에서 내외자손들을 최대한 수렴하기 위한 조처로 생각된다.

이 족보는 초간본인 병오보의 미비점을 수정 · 보완한 재간본(再刊本)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안응창의 서문 뒤에 부기된 외손명단은 당시 족보 간행의 실황을 알 수 있는 유익한 자료로 사료된다.

참고문헌

『순흥안씨족보(順興安氏族譜)』(기해·을유본)
『죽계지(竹溪誌)』
『문성공실기(文成公實記)』
『우졸재집(文成公實記)』(안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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