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정연(挺然), 호는 죽창(竹窓). 전주부윤 안지귀(安知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판서 안침(安琛)이고, 아버지는 병조좌랑 안처선(安處善)이다. 어머니는 최윤신(崔潤身)의 딸이다.
1516년(중종 11)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519년 현량과(賢良科)에 3등으로 급제하여 주서에 임명되었다. 기묘사화가 일어나던 날, 승지 공서린(孔瑞麟)·윤자임(尹自任), 한림 이구(李構)와 함께 입직을 하다 투옥, 이튿날 석방되었다. 뒤에 검열·주서·전적·양성현감(陽城縣監) 등을 지냈다. 1521년 신사무옥 때 송사련(宋祀連)이 바친 서기(書記)에 이름이 올라 있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곤양(昆陽)으로 유배되었다.
1537년에 사면되었고, 1545년(인종 1) 천과(薦科)가 회복되어 전한에 제수되었다. 또다시 파과(罷科)된 뒤에 다시 양성현감을 제수받았으나 얼마 뒤 관직을 물러났다. 스스로 죽창이라 호하고 거문고와 글·화초 등을 즐겼다. 특히, 그림에 뛰어났으며 매화와 대나무를 잘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