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주서, 전적, 양성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정연(挺然)
죽창(竹窓)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94년(성종 25)
사망 연도
1548년(명종 3)
본관
순흥(順興,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
주요 관직
검열|주서|전적|양성현감(陽城縣監)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주서, 전적, 양성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정연(挺然), 호는 죽창(竹窓). 전주부윤 안지귀(安知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판서 안침(安琛)이고, 아버지는 병조좌랑 안처선(安處善)이다. 어머니는 최윤신(崔潤身)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16년(중종 11)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519년 현량과(賢良科)에 3등으로 급제하여 주서에 임명되었다. 기묘사화가 일어나던 날, 승지 공서린(孔瑞麟)·윤자임(尹自任), 한림 이구(李構)와 함께 입직을 하다 투옥, 이튿날 석방되었다. 뒤에 검열·주서·전적·양성현감(陽城縣監) 등을 지냈다. 1521년 신사무옥 때 송사련(宋祀連)이 바친 서기(書記)에 이름이 올라 있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곤양(昆陽)으로 유배되었다.

1537년에 사면되었고, 1545년(인종 1) 천과(薦科)가 회복되어 전한에 제수되었다. 또다시 파과(罷科)된 뒤에 다시 양성현감을 제수받았으나 얼마 뒤 관직을 물러났다. 스스로 죽창이라 호하고 거문고와 글·화초 등을 즐겼다. 특히, 그림에 뛰어났으며 매화와 대나무를 잘 그렸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무릉잡고(武陵雜稿)』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대동야승(大東野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