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2년(태종 12) 형조좌랑을 거쳐, 1415년에는 의금부도사가 되어 이문간(李文幹)과 함께 민무휼(閔無恤)·민무회(閔無悔)를 체포하여 의금부에 가두었다.
이어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역임한 뒤 1420년(세종 2) 당시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태종의 철원 행차를 가뭄 피해가 예상되므로 정지하라고 간언하다가 파직되어 익산에 유배되었다. 그 뒤 곧 풀려나 1425년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가 되고, 이어 군기감정(軍器監正)이 되었다.
이듬해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를 거쳐, 1427년 겸지형조사(兼知刑曹事)가 되었다. 1429년 첨지총제(僉知摠制)·형조참의를 거쳐 1431년 우부대언(右副代言)과 좌부대언(左副代言)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성품이 단정하고 충직하였으며, 언관의 직에 있으면서 위엄을 떨쳐 세종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