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단소 제작의 기능보유자 고이곤(高利坤)은 단소 · 가야금 · 시조를 하는 부친(고영지)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21세에 본격적으로 단소와 가야금을 배우면서 국악에 입문하였다. 단소 제작은 담양 출신으로 해방 직후 군산에 거주했던 김용산에게 배웠다.
악기 연마에도 관심을 가져 1933년 10월에는 김제 황산으로 가서 유동초에게 1년간 단소풍류 · 가야금풍류 · 가곡을 배웠으며, 다음해에는 유동초를 군산으로 모셔와 2년간 사사했다. 또한 휴양차 오성산에 온 추산 전용선에게 1년간 정악 단소를 익혔고, 31세 때는 석암 정경태 문하에서 시조창을 학습하였다. 60세에 전주의 김종환에게서 가야금을, 65세 때는 신관용과 조공련 · 이창선에게 가야금 풍류와 가야금산조를 배웠다.
그는 해마다 군산에 있는 공장에서 단소 100여 개를 만들어 초등학교에 보급해 오고 있다.
그의 후계자 오재벽(1959년생)이 전하는 단소 제작 절차는 다음과 같다. 단소제작 공정은 사계절 기후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략 60∼70일이 요구되며, 모두 수(手)작업으로 한다.
① 오래 묵은 황죽이나 3년 이상된 오죽을 준비한다. 오반죽(烏半竹)의 쌍골을 이룬 대나무는 청황까지 맑은 소리를 낼 수 있어 단소 재료로는 최고이다. 다행히 군산에는 해죽(海竹:시위대) · 오죽 등이 많이 자란다. ② 단소감을 찾으면 적당한 크기로 잘라(지름이 작은 것은 길게, 큰 것은 짧게 자름) 불에 구운 다음 그늘에서 한 달 동안 건조시킨다.
③ 건조된 대나무를 소금물(천일염)이나 죽염에 다시 한 달간 담가 둔다. 죽염에 담그는 이유는 소금의 독소를 제거시켜 입술의 부르틈을 방지 하기 위해서이다. ④ 소금물에서 건져낸 대나무를 깨끗이 씻고 다시 건조시킨다. ⑤ 비틀린 대나무를 불로 반듯하게 펴고 단소 크기에 알맞게 절단한다. 가곡 반주용 여창단소(평조단소)는 퉁소보다 약간 짧게 50cm 정도로, 남창단소(경제단소)는 40.5cm 좌우로, 산조단소(향제단소)는 35∼38cm로 자른다.
⑥ 구멍을 파면서 음정과 음색을 고른 다음, 하자가 없을 때는 악기의 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해 적당한 간격으로 단단히 묶는다.
장구 · 북 제작자 서남규(徐南圭)는 일찍이 정읍농악단에 입문하여 장구와 북에 친숙했고, 정읍 출신의 장구재비 추계동(서남규보다 7, 8세 더 연상임. 추귀동으로도 불림)에게서 수(手)작업으로 만드는 장구의 공정을 전수받은 바 있다. 서남규는 부친의 절구통 만드는 기술을 어릴 때부터 연마해 왔던 터였다.
1984년 제7회 전북 공예품 경진대회에 장구를 출품하여 입상한 것을 시작으로 1987년 제10회 전북 공예품 경진대회에서는 그가 제작한 장구와 북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북 제작에 대해서는 담양 출신인 박균석(朴均錫)과 함께 악기 제작자들의 친목모임인 ‘벌집회’에서 활동하고 있던 관계로 그의 지침을 받을 수 있었다.
서남규는 수작업 대신, 원통 파는 기계를 스스로 연구 제작하여 사용한다. 수작업으로 하는 경우 설장구통 하나를 파는 데 하루가 걸리던 것을 기계로 하면 하루에 20개 정도 팔 수 있다.
원통 파는 작업은 생나무를 가지고 한다. 말린 나무는 쪼개지기 쉽기 때문이다. 오동나무가 가장 좋다. 한국산 오동나무에 비해 중국산이 벌레 먹은 게 적어 요즈음은 중국산을 즐겨 쓴다. 외형이 어느 정도 제작되면 바깥에서 말리는데, 오동나무는 햇볕에서, 미루나무나 소나무 등은 그늘에서 말린다.
가죽은 개가죽이나 쇠가죽을 쓴다. 수컷의 가죽이 암컷의 가죽보다 약간 더 두꺼우므로 수컷의 가죽을 궁편에 쓰고 암컷의 가죽을 채편에 쓴다. 중국산 개가죽은 맞지않아 한국산을 쓴다.
장구 줄은 일반적으로 모시를 꼬아 쓰나, 모시 대신 명주를 쓰기도 한다. 가죽테로는 철근이 좋다. 궁글채의 목구(木球)로는 박달나무를 쓰는데, 예전에는 다듬이질 방망이를 잘라서 만들곤 했었다.
울음통을 깊이 잘 파야 좋은 성음을 얻을 수 있는바, 내형 제작의 생명은 옥낫(옹근 낫)으로 깎는, 나선형의 파도물결 깎기에 달려 있다.
수작업은 서남규의 셋째아들 서인석이, 기계공정은 둘째아들 서기석이, 농악 소품 등 그 밖의 총괄적인 일은 장남인 서두석이 전수하는 등 일가족 모두가 국악기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