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건물. 1974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613년(광해군 5)과 1864년(고종 1)에 중수된 안국사의 경내에는 본전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양 옆에 명부전과 산신각이 배치되어 있었고, 극락전 앞마당 전면에는 계류에 면하여 청하루(淸霞樓)가 있었다.
청하루와 극락전 사이의 마당 양 옆으로 산성과 사고(史庫)를 지키는 승병들의 숙소인 승방이 있었다. 「중수기(重修記)」에 따르면, 안국사는 승병들이 거처할 수 있는 숙소로 건립한 사찰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 속에 승방은 훼철되었고, 강당과 누문 구실을 하던 청하루는 20여년 전 해체하여 요사를 개축하는 데 사용하였다. 따라서 안국사 경내에는 극락전 · 산신각 · 천불보전 · 요사 등 4동의 건물이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정부의 발전소 건설계획에 따라 사찰 전체가 수몰지역에 편입됨으로써 1992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적상산(赤裳山) 남쪽 기슭인 이곳은 안국사와 함께 산성과 사고 수비를 위한 승병들의 거처였던 호국사지(護國寺址) 옆이다. 이건하면서 기존의 건물 외에도 옛날에 있었던 청하루 · 지장전 · 일주문 · 종각 등을 신축하여 새로운 면모를 이루었다.
어간의 주간을 양 협간보다 길게 잡고 각각 4짝과 2짝의 꽃살문을 달았다.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자연석을 그대로 놓은 주춧돌)를 놓고 세운 두리기둥은 민흘림이 뚜렷하며 기둥머리는 화려하게 용두(龍頭)가 장식하고 있다. 공포는 세부수법에 있어 조각적 수법이 강하며, 쇠서[牛舌]끝이 날카로워 후기적 수법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배면의 공포는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맞배집이지만 측면에도 공포가 배치되어 있어 본래는 팔작지붕이었으나 중수과정에서 지붕의 구조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 가구구조를 볼 때 내진고주(內陣高柱)를 평주보다 뒤쪽으로 물려 세우고, 전면 평주와 고주 사이에 대들보를 결구하였다.
대들보 위에는 측면 평주에서 보낸 2개의 충량이 걸쳐 있고, 충량 상부에 다시 대공을 세워 지붕을 지탱하는 이와 같은 가구구성은 팔작지붕의 구성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