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이중원(李重元) · 이상기(李相基) · 바또로코프. 경북 안동출신.
1920년대에 조선공산당 경상북도 도책임자와 신간회 안동지회 간사로 활동했던 안상길(安相吉)의 동생이다. 어려서 한학을 배웠으며, 1923년 무렵부터 풍산소작인회, 안동 와룡청년회, 안동청년연맹에서 집행위원을 지냈다.
1925년 4월 고려공산청년회 결성에 안동청년회의 소속으로 참여하였고, 10월경 고려공산청년회에서 모스코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유학생으로 선발되었으나 졸업하지는 못하였다. 그후 연해주 농촌소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였다.
1929년 이후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주력하였다. 코민테른 제6차대회에 참석했던 이동휘와 김규열(金奎烈)로부터 12월테제에 관한 내용을 전달받은 안상훈은 1929년 1월경 길림성(吉林省) 돈화현(敦化縣)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당 재건문제에 관해 논의하였으며, 3월 조선공산당 재건설 준비위원회 발기회가 결성된 직후 송무영(宋武英)과 함께 국내로 파견되어 서울에서 당 재건공작에 착수하였다.
처음에는 사회운동계의 유력인사들과 손을 잡고 재건운동을 벌일 계획이었으나 여의치 못하자 방향을 바꾸어 주로 연희전문학교와 보성전문학교를 중심으로 학생조직의 강화에 주력하였다. 서울 · 부산 · 예천 · 안동에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기 위한 조선공산주의 열성자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으나 1929년 6월 일본 경찰에 탐지되어 검거되었으며, 1931년 9월 경성복심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