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호장(致仕戶長)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998년(목종 1) 3월에 주현(州縣)의 말단행정실무를 담당하던 호장이 70세가 되면 안일호장으로 삼아 향역(鄕役)을 벗게 하였으며 직전(職田)의 반을 계속 주어 경제적 기반을 유지하게 하였다.
안일호장의 임명은 호장의 경우와 같이 해당 고을의 지방관의 제청에 의하여 상서성(尙書省)에서 승인 첩(貼)을 발급한 뒤에 이루어졌으며 이 때에는 본인의 근무연한과 향직경력을 참작하였고 정조(正朝) 등 향직이 주어지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경주지방에서는 안일호장을 중심으로 안일방(安逸房)이라는 향리계층의 최상층 조직체가 결성되어 향리사회를 규제하기 위한 각종 약속과 내부규약이 의정되어 실시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