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4.1m. 오색리의 약수터에서 계곡을 따라 1㎞ 쯤 올라가면 좌우로 물줄기가 갈라져 있으며, 여기서 오른쪽 골짜기로 약 500m 되는 오른쪽 기슭에 옛 절터가 있다.
대지는 그리 넓지 않은 좁은 사역(寺域)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현재 삼층석탑 이외에 또다른 석탑의 부재가 흩어져 있고 원각(圓刻)의 석사자(石獅子)가 남아 있다. 그리고 법당자리에는 이중의 원좌가 마련된 주초석(柱礎石)과 층계석, 좌우 난간석(欄干石) 등이 원위치에 남아 있다.
이곳 주민들은 여기를 성국사지(城國寺址)라 하나 근거는 확실하지 않고, 오히려 성주사낭혜화상탑(聖住寺朗慧和尙塔) 또는 ≪조당집 祖堂集≫에 보이는 ‘설산오색석사(雪山五色石寺)’ 또는 ‘설악오색석사(雪嶽五色石寺)’의 절이름을 오색리의 지명과 관련시켜 원사명(原寺名)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석탑은 완전히 무너졌던 것을 1971년에 복원하였다.
석탑은 5매의 장대석(長臺石)으로 결구된 지대석(地臺石) 위에 건립되었는데, 상하 2층의 기단(基壇)을 형성하고 그 위에 탑신부(塔身部)를 놓았으며 탑 꼭대기에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하였던 전형적인 신라시대의 조탑양식을 보이고 있다.
하층기단은 높직한 굄과 면석이 동일석으로 조성되었으며, 석재는 좌우에 기단석을 놓고 그 사이 전후에 1석씩을 배치하여 4매의 장대석으로 짜여졌는데, 각 면에는 양쪽의 우주와 중앙의 탱주 1주가 정연하게 조각되어 있다.
하층기단 갑석은 3매의 판석(板石)으로 짰는데, 상면은 경사를 이루어서 네 귀퉁이의 합각이 뚜렷하며, 한편 중앙부에 높직한 원호(圓弧)와 낮은 각형의 굄대로 그 위의 상층기단을 받고 있음은 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굄수법이라 하겠다.
상층기단 면석은 4매의 판석으로 조립되었는데, 각 면에는 양쪽의 우주와 중앙의 탱주 1주가 모각(模刻)되었다. 상층기단 갑석은 2매의 판석으로 덮였는데, 하면에는 깊숙이 낙수홈이 얕게 오목새김되고 네 귀퉁이도 낙수홈이 표시되었으며 부연은 크지 않으나 정연하게 조각하였다.
갑석 상면은 약간 경사를 이루어서 네 귀퉁이의 합각이 뚜렷하며, 중앙부에는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기 1석씩으로 조성되었다. 각 층의 옥신에는 각 면에 우주가 정연하게 표시되었으며, 특히 초층옥신의 상면 중앙에는 1변의 길이 32㎝, 깊이 8.5㎝의 네모난 사리공(舍利孔)이 있다.
옥개석은 각 층이 같은 형태로서 옥개받침이 4단씩이며 옥개석 위에 있는 옥신굄도 각형 2단씩이다. 처마 밑에 오목새김된 낙수홈은 얕은 편이고, 낙수면이 평박하고 4면의 합각이 예리하며 전각에 반전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보아 경쾌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각 전각(轉角)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으로 작은 둥근 구멍이 있는데, 초층은 1구멍이나 2 · 3층은 2구멍씩이다. 상륜부는 노반부터 아무런 부재도 남아 있지 않으며, 다만 3층옥개석 정상면에 지름 7㎝, 깊이 4.5㎝의 둥근 찰주공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