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자평(子平). 교관 어몽린(魚夢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순운판관 어한명(魚漢明)이고, 아버지는 경기도관찰사 어진익(魚震翼)이다. 어머니는 원주원씨로, 통사랑 원빈(元玭)의 딸이다.
과거에 여러 차례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고, 1698년 (숙종 24) 음보(蔭補)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이 되었으며, 그 해 겨울 장릉복위설도감차 겸 별공작(莊陵復位設都監差兼別工作)으로 공을 세워 6품에 올랐다. 이듬해 의금부도사와 의영고주부를 거쳐, 1700년 신계현령(新溪縣令)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1702년 잠시 훈국랑(訓局郎)으로 재직하다가 곧 양근군수(楊根郡守)가 되었고, 1705년 병으로 사직하였다. 1706년 다시 기용되어 전생서주부(典牲署主簿)·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강화부경·인천부사를 거쳐 1712년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이 되고, 이듬해 승지에 올랐다.
1716년 70세가 되어, 통정대부에 가자(加資)와 아울러 첨지중추부사·오위장이 되었다. 이 해에 손녀가 세자빈(世子嬪: 景宗妃 宣懿王后)으로 책봉되자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올랐고, 이어 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올랐다.
1721년 장례원판결사에 보임되어 사직을 청하였고, 이듬해 다시 한성부우윤에 임명, 재임 중에 죽었다. 어려서부터 관화근중(寬和謹重: 관대하면서 화합하기를 좋아하였고, 언행이 신중함)하여 원대한 기량이 있었고, 문장이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