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은 여량(礪良)과 낭산(朗山)이 합쳐져 생긴 지명이다. 여량현은 본래 백제의 지량초현(只良肖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에 여량으로 바뀌어 전주도독부 관내 덕은군(德殷郡)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전주에 속하였으며, 1391년(공양왕 3)에 여량현에 감무를 설치하고 낭산현과 공촌(公村) · 피제(皮堤) 부곡을 겸임하게 하였다.
낭산현은 본래 백제의 알야산현(閼也山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야산(野山)으로 바뀌어 전주도독부 관내 금마군(金馬郡 : 지금의 익산)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태조 23)에 낭산으로 고쳐 고려 시대에는 전주에 속하였다가 1400년(정종 2)에 여량의 속현으로 되었다. 1404년(태종 4)에 여량의 ‘礪’자와 낭산의 ‘山’자를 따서 여산현으로 하였다.
1436년(세종 18)에 태종의 왕후인 민씨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시키고 충청도에 이관되었다가 1444년(세종 26)에 전라도로 복귀시켰다. 조선 인조 때 이곳에 전라도 후영(後營)이 익산군에서 이설되어 임피(臨陂)를 위시한 전라도 동북 지방의 10개 읍을 관할하였다. 1699년(숙종 25) 단종 왕후 송씨의 본관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1895년(고종 32)에 군이 되어 전주부에 속하였다가 이듬해에 전북특별자치도에 속하였으며, 1906년에 채운면(彩雲面)이 충청남도 은진군으로 이속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익산군에 병합, 여산면이 되었다. 1995년에는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된 새로운 익산시의 소속으로 되었다.
여산은 전라도와 서울 방면간의 길목으로 관내에 양재역(良才驛)이 있었고, 병자호란 때에는 이곳에 의병청(義兵廳)이 설치되었다. 충청도 접경의 작지(鵲旨 : 지금의 강경읍 까치말)에는 매년 7월 15일에 부근 지역의 양도 주민들이 모여 수박희(手搏戱)로 승부를 다투며 즐기는 풍속이 있었다. 또한 접경 지대의 황화정(皇華亭)은 전라도의 신구 관찰사가 교대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