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춘향수절가」는 19세기 후반에 완판본으로 출판된 「춘향전」의 이본이다. 「춘향전」의 이본 중에서도 판소리의 전성기에 여러 명창들에 의해 다듬어진 판소리 사설을 수용하여 독자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린 대표적인 이본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전(古典) 「춘향전」의 대표적 이본으로, 완판본 30장 「별춘향전(別春香傳)」이 33장본으로 확대되면서 「열녀춘향수절가」라는 새 표제가 붙게 되었다.
이 대본이 독자의 호응을 받게 되자, 다시 84장본으로 재확대하면서도 「열녀춘향수절가」라는 표제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상권 45장, 하권 39장으로 된 완서계서포(完西溪書舖)판을 「열녀춘향수절가」로 부르고 있다.
선행(先行)한 「별춘향전」 계통에 비해 춘향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전개되기 때문에 춘향과 월매, 향단의 활약과 인간상(人間像)이 특징 있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춘향의 출생 대목이 확대되면서 춘향의 신분이나 사회적 계층도 크게 변모(變貌)되었다.
즉, “이때 전라도 남원부의 월매라 하는 기생(妓生)이 있으되 삼남의 명기(名妓)로 일찍 퇴기(退妓)하여 성가라 하는 양반을 데리고 세월을 보내되……”로 서술하면서, 춘향을 남원부사인 성 참판(參判)의 후생(後生)으로 설정하였다.
그 결과, 신재효(申在孝)의 「남창춘향가」에서 성 천총(千摠)의 서녀(庶女)로 설정되면서 시작된 비기생계(非妓生系) 「춘향전」의 출발이 「열녀춘향수절가」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현대의 「춘향전」은 대개 성 참판의 서녀로 춘향의 신분을 정하고 있다. 또, 월매의 인간적 꿈이 강화되어 춘향의 이별과 고난의 슬픔은 월매의 한(恨)의 정서와 어우러지면서 「춘향전」의 예술적 기능을 높이게 되었다.
서두(書頭)는 “ 숙종대왕 즉위 초의 성덕(聖德)이 넓으시사 성자성손(聖子聖孫)은 계계승승하사 금고옥족은 요순시절(堯舜時節)이요 의관문물(衣冠文物)은 우탕의 버금이라.”로 시작되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칭송(稱頌)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는 종결 부분에서 어사(御史)가 남원의 공사(公事)를 닦은 뒤에 춘향 모녀와 향단을 서울로 올려 보내고, 자신은 전라좌우도를 순읍(巡邑)하며 민정(民情)을 살펴서 왕에게 보고하자 이 어사를 이조참의(吏曹參議), 대사성(大司成)으로 봉하고, 춘향을 정렬부인(貞烈夫人)으로 봉함으로써, 그들이 백년동락(百年同樂)하게 된다는 사실과 호응(呼應)한다.
춘향을 성 참판의 서녀로 설정했기 때문에, 이야기의 전체적 흐름에서 나타난 변모는 광한루(廣寒樓)에서 춘향과 도령이 만날 때 자유연애의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즉 춘향이 자신을 기생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도령이 광한루에서 춘향을 불러도 춘향은 이를 거역(拒逆)한다. 이에 따라 춘향에 대한 도령의 호기심이 더욱 자극되고, 춘향의 집을 찾은 도령도 춘향을 여염가(閭閻家)에서 성장한 규수(閨秀)로 인정해 주려고 한다.
이에 반하여, 변 부사(府使)는 춘향이 기생의 딸이므로 기생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도령과 변 부사에 대한 춘향의 태도는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는 「열녀춘향수절가」에서 기생 춘향과 기생 아닌 춘향의 갈등(葛藤)을 더욱 고조(高潮)시킨다. 또한 이러한 점이 이본다운 특징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에 「열녀춘향수절가」가 최고의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다만 세부적인 내용 중에 춘향과 도령이 광한루에서 만난 날이 5월 단오일(端午日)이고, 이별 시에 서로 신물(信物)을 주고받는 장면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신관(新官)이 서울 자하골 변학도이고, 도령은 왕의 제수(除授)에 의해 전라어사로 내려가게 되는 점 등도 특징적이다.
작품 속에서 한시(漢詩) 형식의 어구(語句)가 빈번하게 인용(引用)되면서 언어유희(言語遊戲)와 같은 희학(戲謔)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한시의 삽입은 작품의 흥미를 높이면서, 작품의 내용과 관련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작품 속 한시 중 어사출두시는 사건 전개에도 긴요(緊要)한 역할을 한다. 또 여러 시 작품에서 가져온 구절(句節)들이 엉클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남원고사(南原古詞)」본과 비교해 보면, 이 작품에서는 월매, 방자, 농부 등 신분이 낮은 인물들이 양반과의 관계에서 긴장 관계를 형성하고, 신분이 낮은 인물들 상호 간의 긴장감(緊張感)이 해소되면서 보다 건강한 모습을 보여 준다.
「열녀춘향수절가」는 순조, 헌종, 고종의 3대에 걸친 판소리 전성시대(全盛時代)의 여러 명창에 의해 다듬어진 판소리 사설을 부분적으로 수정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광대의 재담(才談)을 비롯한 풍부한 삽입가요(揷入歌謠)가 흥겨운 분위기와 한스러운 분위기 간의 적절한 조화를 만들어 낸다.
또, 표면적으로는 춘향의 열녀(烈女)로서의 인간상을 내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한 유교(儒敎) 윤리(倫理)의 관습적(慣習的) 수용만이 아닌 불의(不義)에 저항하는 살아 있는 인간의 참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춘향의 사랑과 고난,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이라는 전통 「춘향전」의 의미를 최대한 수용하면서도, 당시의 시대감각(時代感覺)에 어울리는 새 문체(文體)를 발전시킨 점이 「열녀춘향수절가」가 「춘향전」의 예술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 공로로 평가된다.
그리고 춘향의 인간미(人間味)를 부각하면서 중국 인물의 이미지를 적절하게 활용하였다. 육체적인 아름다움은 양귀비(楊貴妃)와 서시(西施)의 관능미(官能美)를 끌어다 쓰면서, 정신적인 아름다움은 아황, 여영의 정절(貞節),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현실 비판과 저항 의식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