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양근(盧良根, 호는 洋兒 · 良兒 · 羊兒, 松都)은 일제강점기 아동문학가로, 어린이 정서 교육을 위한 ‘아동문학운동’에 꾸준한 열성과 노력을 기울인 인물이다. 1920년대부터 시를 발표하거나 동화를 투고하는 등의 습작기를 거쳤고, 1935년을 전후하여 『동아일보』 신춘문예(동화 부문)에 「눈오는 날」(1934), 「참새와 구렁이」(1935)가 가작 입선되고, 1936년 「날아다니는 사람」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동화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동화집 『날아다니는 사람』(1938), 『어깨동무』(1942) 등을 출간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으나 황해도 금천 출신의 재북(在北) 작가이기에 해방 후 그에 대한 정보는 확인하기 어렵다. 1936년 철원에서 교사 생활을 했고, 1937년에는 원산 구세병원에서 근무한 이력이 그의 글을 통해 확인된다. 『동아일보』에 1년 동안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 일요(日曜)’ 페이지를 담당해 「아름답고깨긋한 생각을가집시다」(1939. 5. 14), 「부모님말슴을 순종하십시다」(1939. 8. 20)와 같은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1935년 1월 8일자의 당선자 소개를 통해 그가 1907년 전후에 출생했으며, 북한자료센터의 『문학신문』을 통해 그가 1957년 이전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철원 읍내 소학교에 다닌 장시환은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별사람’이라고 불리는 수재다. 인품도 머리도 좋은 그는 반장까지 지낸 수재였으나 어려운 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한다. 그는 신흥동에서 함께 졸업한 동무 열세 명을 모아 ‘상조회’를 조직하고, 그중 한 명을 서울로 유학 보내는 일을 제안한다. 추첨을 통해 뽑힌 윤걸의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아이들은 우물을 파기도 하고, 거름을 모으고, 목간통을 짓는 등 갖은 고생을 한다. 그 과정에서 시환이 몸을 크게 다치고, 이 사건을 통해 아이들의 노력과 우정에 감탄한 어른들까지 합심하여 이들을 지지해준다. 동무들의 노고를 알면서도 차츰 처음의 열정이나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던 윤걸은, 자신에게 줄 돈을 아끼기 위해 걸어서 서울까지 온 시환을 보고 뜨거운 눈물로 참회한다. 둘은 손을 잡고 앞으로 마을의 발전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더욱 열심히 해나갈 것을 약속한다.
1932년 노양근은 철원의 한 감리교회가 주최한 대사경회 및 농업 강습회에 참가해 장시화라는 한 소년운동가를 보게 된다. 그를 취재하여 쓴 장편 소년소설이 바로 이 『열세 동무』다. 노양근은 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한 1936년 7월 2일 『동아일보』 ‘작자의 말’에서 해마다 봄이면 각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졸업생들 중, 더욱이 농촌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상급 학교에 갈 수 없는 소년들이 울며불며 갈팡질팡하는 것을 보면 마음으로 울었다고 말한다. 그래도 낙망하지 않고 씩씩하게 일하는 소년‧소녀들을 보며 그들과 함께 웃고 울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것이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1940년 이후 『열세 동무』는 아동들에게 안심하고 읽힐 만한 마땅한 책, 소설인 동시에 인생의 산 교육을 지시하는 인생 교과서라는 평을 받았다.
『열세 동무』는 시환과 같은 훌륭한 인물의 희생과 선의가 주변을 감화시키듯 교육을 통해 한 사람을 훌륭히 키워낸다면 그 사람이 농촌의 위기를 극복할 힘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노양근의 소년소설은 대부분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데 여기에는 192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농민문학에 대한 관심, 농촌 개량과 농민 생활 개선을 표방한 계몽 담론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1930년대 농민문학이 대유행하게 된 사회적 맥락이 반영되어 있다. 당대 농촌 계몽 담론의 서사적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