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전투에 동원될 때 원수·부원수 및 도지병마사(都知兵馬使)가 전군을 지휘하는 사령부를 구성했으며 그 밑에 5군이 있어서 각기 병마사·지병마사·도병마사 등이 임명되었다.
5군 조직은 전투의 수행을 위한 임시적인 것이었으나 전투가 끝난 후에 해체되지 않고 평상시에도 출정에 대비하여 편제상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기간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비상시가 되면 원수·부원수 및 각군 병마사들의 지휘체계가 이루어지고 아울러 6위의 중앙군과 지방의 주현군 등이 징발, 배속되어 출동하였다. 5군이 부대편성을 뜻하는 만큼 진법(陳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 초기에 정도전(鄭道傳)은 고려시대의 군제(軍制)를 설명하면서 ‘무사(無事)할 때는 병법을 익히고 일이 생겨 출군(出軍)할 때는 반드시 5진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5진은 전투를 위한 편성으로서, 그것은 진법과 관련을 갖는 것으로서 5군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고려 말에 이르러 전쟁상태가 오래 지속됨에 따라 5군은 사실상 군사조직의 중추가 되었는데 공양왕 3년(1391)에 5군 가운데 전·후 양군을 줄여 3군을 편성하여 상설적인 도총제부(都摠制府)를 설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