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高敞) 출신. 선대는 고창오씨 시조인 한림학사 오학린(吳學麟)이고, 할아버지는 직한림(直翰林) 오질(吳質)이며, 아버지는 탁라도(乇羅道: 제주도에 설치된 고려시대의 道) 구당사(句當使) 오인정(吳仁正)이다. 오세공(吳世功)의 아우이며 오세재(吳世才)의 형이다.
집안 대대로 유학을 본업으로 하여, 3형제가 모두 문장으로 이름이 났다. 무신란(武臣亂) 전인 의종(毅宗) 때에 과거에 급제해 형 세공과 함께 높은 관직에 올랐다고 하나 구체적인 관직이나 이력은 알 수 없다.
다만,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3의 「자오낭중세문가방광명사문장로차운문공(自吳郎中世文家訪廣明寺文長老次韻文公)」이라는 시를 통하여 낭중(郎中)을 지냈음을 알 수 있다.
1194년(명종 24)에 이규보가 「차운오동각세문정고원제학사삼백운시(次韻吳東閣世文呈誥院諸學士三百韻詩)」를 지었는데, 이를 통해 동각(東閣)을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시의 첫머리에 있는 이규보의 서문에 의하면, 오세문이 “고금의 시집 가운데 300운이나 압운(押韻)을 한 작품이 없는데, 나는 302운을 지었다.”고 자랑하면서 보여주었기에 차운(次韻)한다고 하고 있다.
평생 지은 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고 하나 없어진 게 많아 전하는 작품은 매우 적다. 이밖에 이규보가 그의 「조수론(潮水論)」에 논평을 가한 「논조수서(論潮水書)」를 지은 것으로 보아 밀물 · 썰물에 관한 저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삼국유사』에 의하면 「역대가(歷代歌)」를 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