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초명은 오산준(吳山俊).
음서(蔭敍)로 벼슬에 나아가 1158년(의종 12) 내시(內侍)에 입속(入屬)하였고, 1160년 영광군(靈光郡)에 외보(外補: 지방관으로 보임하는 일)되었으며, 1169년는 식목녹사(式目錄事)가 되었다. 이후 무신정권(武臣政權)이 수립되면서 동로병마녹사(東路兵馬錄事)를 거쳐 1176년(명종 6) 공역서령(供驛署令), 이듬해 추밀원당후관(樞密院堂後官)·권지각문지후(權知閣門祗候), 1178년 북로감창사(北路監倉使)·지승평군사(知昇平郡事)를 역임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날카로웠으며 행정업무에 밝아 영광의 행정을 맡았을 때 수리시설에 주력, 유망민(流亡民)의 안집(安集)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묘지명(墓誌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