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빈중(贇仲), 호는 지천(支川). 아버지는 예문관검열을 지내고 도승지에 추증된 오희도(吳希道)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도사(都事) 김복흥(金復興)의 딸이다. 정홍명(鄭弘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이시백(李時白)·이식(李植)·오두인(吳斗寅) 등을 포함한 당대의 명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다.
1635년(인조 13) 진사시에 합격하여 음공으로 세자익위사세마에 서임되었으며, 그 뒤 의금부도사에 재임하던 중 이시백을 도와 1644년에 일어난 심기원(沈器遠)의 역모사건을 진압하여 영국원종공신(寧國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그 뒤 경양도찰방(景陽道察訪)·전주판관 등을 지내고,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사간원정언·세자시강원사서·성균관전적, 예조 및 병조의 좌랑을 두루 역임하였다.
1653년 영남지역에 흉년이 들어 경상도사의 임무를 띠고 신속한 구제정책을 전개하여 기민을 구제하는 일에 매진하다가 함양의 여사(旅舍)에서 객사하였다. 승정원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지천일고(支川逸稿)』 1권 1책과 유묵(遺墨)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