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문경(文卿), 호는 순암(醇庵) 또는 우불급재(愚不及齋). 공조판서 오두인(吳斗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오진주(吳晋周)이고, 아버지는 대제학 오원(吳瑗)이다. 어머니는 강릉최씨로, 최석(崔寔)의 딸이다.
음보로 관직에 나아가 세자익위사세마를 지냈으며, 1755년(영조 31) 할머니인 명안공주(明安公主: 현종의 딸)의 손자라는 배려를 받아 특명으로 6품에 올랐다. 도사에 이르렀으나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다가 1772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승지를 거쳐, 부제학(副提學)·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783년(정조 7) 문안사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직제학(直提學)이 되었다. 이어 홍문관·예문관의 대제학을 지냈으며, 1790년에는 이조판서에 올랐다. 그뒤 홍문관대제학·예문관제학 등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1791년(정조 15)에는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같은 해 이조판서로 홍문관제학을 겸하였으며, 임시 수어사로 유진(留陣: 진지에 머무름)하기도 하였다. 1792년(정조 16) 판중추부사로 옮겼으나 그해 12월 재직 중에 사망하였다. 학문에 뛰어나 제자백가에 두루 통하였고, 특히 『주역』에 뛰어났다.
정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오랫동안 문형(文衡: 대제학)과 전조(銓曹: 吏曹와 兵曹의 통칭)를 맡았다. 왕은 오재순의 겸손하고 과묵함을 가상히 여겨, ‘우불급재란’ 호를 내리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저서로는 『주역회지(周易會旨)』·『완역수언(玩易隨言聖學圖)』·『순암집(醇庵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