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석인본. 1965년 10세손 진호(鎭祜)·광호(光祜)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규헌(李圭憲)·김준식(金駿植) 등의 서문, 권말에 후손 진호·요원(堯元) 등의 발문이 있다. 전라남도 장성의 변시연가(邊時淵家)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 시 4수, 전(箋)·장(狀)·서(書) 각 1편, 잡저 4편, 제문 2편, 행장 1편, 권2에 부록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경기도 안성전투에 참가한 사촌동생 신남(信男)이 승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지은 「문종제판관안성파적(聞從弟判官安城破賊)」이 실려 있다.
전의 「헌곡포전(獻穀布箋)」은 1592년 임진왜란 중에 고향인 전라남도 장성에서 김제민(金濟閔)과 함께 모집한 군수품 중 쌀 300석과 모시 15필을 법성포(法聖浦)를 통하여 행재소로 보내면서 임금에게 올린 것이다.
한편, 임진왜란 중에 오산(鰲山) 남문에 설치한 의병도청(義兵都廳)의 맹주(盟主)로 있으면서, 도유사 서곤(徐滾)과 함께 도체찰사의 임무를 띠고 그곳에 온 정철(鄭澈)에게 흩어진 민심을 수습할 방안과 사기를 고취시킬 대책을 10여조에 걸쳐 진언한 「상도체찰사정상국서(上都體察使鄭相國書)」가 있다.
「창의일기(倡義日記)」·「남문창의격문」·「천병호향통문(天兵犒餉通文)」 등은 전란사를 연구하는 데 참고자료가 된다. 이밖에도 임진왜란 때 진주·남원 등지에서 전사한 김부(金溥)와 그의 아들 극후(克厚)·극순(克純) 등을 상대로 지은 뇌사(誄詞)와 가정수칙(家庭守則)을 기술한 「가훈(家訓)」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