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고종 18) 반우형의 후손 반진하(潘震夏)가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허전(許傳)과 소세양(蘇世讓)의 서문이, 권말에 김규응(金奎應)·김규철(金奎喆)의 발문과 후손 반석중(潘錫中)의 옥계집인간사실(玉溪集印刊事實)이 수록되어 있다.
5권 2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국민대학교 도서관에 있으며, 계명대학교 도서관에도 2책 중 1책이 있다.
권1에 문(文) 1편, 소초(疏草) 4편, 권2에 시 168수와 부록으로 한빙계(寒氷戒), 권3에 설(說) 1편, 권유문(勸諭文) 1편, 권4에 서(序) 1편, 기(記) 2편, 권5에 부록으로 가장·문과방목(文科榜目)·훈록(勳錄)·신도비명·세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시는 대부분 유학의 핵심적인 명제들을 소재 또는 제목으로 하여 세계와 인간에 대한 유학적·성리학적 사유 세계를 시적 구도 속에 포착한 것이 대부분이다. 자연을 읊은 시도 단순한 자연시의 범주를 넘어서서 형이상학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연작시가 많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소초 중 「상진육조(上陳六條)」에서는 문묘를 수리하고 성균관을 건설하며 총대(葱臺)를 없애고 박사를 설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 무오사화 당시 희생된 사람을 복관하고, 김종직(金宗直)의 문도로서 귀양 가던 중에 필화사건으로 죽은 이종준(李宗準) 등에게 벼슬을 추증하고 정려를 세워줄 것도 요구하고 있다. 연산군에 의해 단행된 단상제도(短喪制度)를 삼년상으로 회복하고, 문종의 위(位)에 제사를 지내며, 정몽주(鄭夢周)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 후사에게 벼슬을 줄 것 등도 건의하고 있다.
「절검진학(節儉進學)」에서는 당시의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태도를 비판하면서 학문에 정진할 것을 건의하였다. 「재이(災異)」는 재이의 원인이 군자의 도가 쇠하고 소인이 득세함에 있으므로, 소인을 물리치고 군자를 등용할 것을 주장한 글이다. 「종성권유문(鍾城勸諭文)」은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다한 사람의 행적을 두루 나열하고 효와 우애를 권하는 한편,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기록한 것이다.
부록에 수록된 「한빙계」는 김굉필(金宏弼)이 반우형에게 처사접물(處事接物)의 방책으로 적어준 18조(條)로서, 김굉필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소중한 자료이다. 「훈록」은 중종반정에 참여한 정국공신(靖國功臣)들을 나열하고 정국사적(靖國事蹟)을 서술한 것으로, 당시의 정치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