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일고 ()

광산이씨연원록 / 용재일고
광산이씨연원록 / 용재일고
유교
문헌
조선 전기의 학자, 이홍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철종 연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전기의 학자, 이홍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철종 연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철종연간에 후손들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책머리에 장석룡(張錫龍)의 서문이, 끝에 장승택(張升澤)의 발문이 있다. 『광산이씨연원록(光山李氏淵源錄)』에 합록되어 있다.

서지적 사항

1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시 7수와 제문·행장·유허비명·후서(後敍)·후지(後識)·회연원사봉안문(檜淵院祠奉安文)·상향축문(常享祝文)·봉양사묘우상량문(鳳陽祠廟宇上樑文)·봉양사상향축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구(鄭逑)는 만시에서 저자의 효행과 학문을 말하였고, 저자의 아우 이홍량(李弘量)은 제문에서 형과의 극진하였던 정의(情誼)를 말하며 슬퍼하였는데, 오랫동안 명문(名文)으로 읽힌 글들이다. 이원정(李元禎)은 행장에서, 저자 삼형제의 자(字)가 각각 백용(伯容)·중용(仲容)·계용(季容)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유학자로서의 행실이 저명하여 세칭 ‘영남삼용(嶺南三容)’으로 불렸다고 하면서, 정구가 그들의 매부가 된 연유를 말하였다.

허목(許穆)은 유허비명에서, 성주에 삼처사(三處士)가 있었으니 그들은 대대로 서울에서 벼슬하며 살았으나, 낙동강 한 기슭으로 내려와 살면서 벼슬은 하지 않고 학행과 덕행·선행으로만 살면서 선속(善俗)을 일으켰으니, 수백세에 이르기까지 남의 모범으로 빛날 것이라고 적고 있다.

박진구(朴震耉)는 「회연원사봉안문」에서, 영남의 큰 선비인 정구와 이들 삼현(三賢)이 한집에서 같이 살았으니 봉안한다고 하였다. 상향축문은 최흥벽(崔興璧)이 지었고, 봉양사의 상량문은 금시술(琴詩述)이 지었으며, 봉양사상향축문은 이휘령(李彙寧)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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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윤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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