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단양(丹陽).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 선전관으로 공을 세워 정사원종공신(靖社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으로 인조가 피난하여 한강에 이르렀으나, 배가 남안에 있어 어려웠는데 헤엄쳐 건너가 배를 가져와 왕을 호종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 부친의 상중이었으나, 관찰사의 요구에 의하여 수어대장(守禦大將)으로 쌍수산성(雙樹山城)을 방어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전주영장(全州營將)으로 근왕병(勤王兵)을 인솔하여 광주(廣州)에서 올라왔다.
1648년 홍청병사(洪淸兵使)가 되었다. 죽은 뒤인 1724년(경종 4) 병조판서 겸 지훈련원사(兵曹判書兼知訓鍊院事)에 추증되었다. 1811년에 '충장(忠壯)'으로 시호를 내렸고, 정문(旌門)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