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현의 후손 안효갑(安孝甲)·안효명(安孝明)이 1910년 간행하였다. 서문은 김도화(金道和)가 썼으며, 발문은 허채(許埰)·노상익(盧相益)이 지었다.
2권 1책.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첫머리에 세계도가 있고, 권1에 시 59수, 소(疏) 1편, 명(銘) 3편, 권2에 부록으로 유사·행록·행장·묘표·묘표후지(墓表後識)·묘지명·만장·척유(摭遺)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효행이 뛰어나고 행실이 돈독하며 근본에 힘쓴 저자의 생애를 대변하는 작품이 많다. 선현을 사모하고 그들의 행의를 본받으려 하는 학자적 풍모가 시 전편에 나타나 있다. 「경차회재선생성경음(敬次晦齋先生誠敬吟)」·「경차여헌선생성회운(敬次旅軒先生醒懷韻)」·「감로사경차회헌안선생판상운(甘露寺敬次晦軒安先生板上韻)」 등에서는 이언적(李彦迪)·장현광(張顯光)·안향(安珦) 등 선현들의 시를 보고 그 의경을 따르고자 하는 심회를 읊고 있다.
「권학자(勸學者)」는 현우(賢愚)는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며 후학들에게 경계하는 시이다. 「강태공(姜太公)」에서는 늙도록 위수(渭水)에서 낚시질하던 강태공이 문왕(文王)에게 발탁되어 주나라를 크게 일으킨 역사적 사실을 읊고 있다. 「수로왕(首露王)」에서는 사람들이 수로왕릉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보고 그 경이감을 노래하였다. 두 시는 모두 장구한 세월이 흐른 뒤에도 과거의 인물이 잊히지 않고, 후대의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현실을 목도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본 것이다.
이 밖에 「합강정(合江亭)」과 같이 가까운 벗과 함께 강상(江上)의 승경을 찾아 멋을 즐기는 풍류적 생활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나,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애도한 만시 등이 있다.
소의 「청개정복소첩황(請改定服疏貼黃)」은 기해복제 때 유세철(柳世哲) 등과 함께 서울에 가서 반대상소를 올렸으나 불윤비답(不允批答)을 받자 이튿날 다시 올린 소이다. 『의례(儀禮)』 등의 여러 예설을 들어 정해진 복제가 불가함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개정하기를 청한 내용이다. 명은 벼루·붓·먹 등 문방구의 특징을 각각 옛날의 고사와 관련시켜 간략히 서술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