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단양(丹陽)이다. 1268년(원종 9)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로서 낭장 박신보(朴臣甫)와 함께 몽고의 사신 왕국창(王國昌) 일행을 흑산도로 인도하여 뱃길을 살폈다. 이는 남송(南宋)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몽고의 조처였다.
1273년 서해도안찰사(西海道按察使)로 제주를 거점으로 하여 저항하는 삼별초를 공격하였다. 이때 전함이 많이 침몰하였다는 이유로 다루가치(達魯花赤) 이익(李益)의 문책을 받아 투옥되었다. 1277년(충렬왕 3) 전라도안렴부사(全羅道按廉副使)를 거쳐, 1280년 잡단(雜端)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