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도이(道以, 또는 道而). 한성부우윤 원만춘(元萬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원몽정(元夢鼎)이다. 아버지는 원명직(元命稷)이며, 어머니는 이여(李畲)의 딸이다.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로에 나와 별겸춘추(別兼春秋)로서 한림에 천거될 차례에 다른 인물이 천거되자, 추천자인 이천보(李天輔)가 사당(私黨)을 추천하였다는 소를 올렸다가 오히려 삭직당하였다.
1740년 교리로 재기용되었고, 이듬해는 승지·정언(正言)·부교리 등을 역임하였으며, 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을 겸하였다. 이후 수찬(修撰)·헌납(獻納)·교리·사간·응교(應敎) 등 청요직을 번갈아 지냈고, 1746년 대사간에 오르게 되었다.
1753년 외직으로 전보되어 양주목사가 되었으며, 3년 뒤 중앙관직으로 복귀하여 대사간·대사헌을 거쳐 1759년 도승지가 되었다.
그 뒤 잠시 전라도관찰사·강화유수를 지냈고, 이조참판을 거쳐 판서에 올랐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외삼촌으로 영조의 총애가 깊었으며, 원경순이 죽은 뒤 영조는 친히 제문을 지어 치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