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는 화랑의 전신으로 ‘源花’(원화)라고도 표기한다. 『삼국유사』 권3 미륵선화(彌勒仙花)·미시랑(未尸郞)·진자사(眞慈師)조와 『삼국사기』 권4 진흥왕(眞興王)조에 전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민가의 아름다운 처녀들을 골라 원화라 하여 그들에게 효제충신(孝悌忠信)을 가르쳤는데, 남모와 교정(삼국사기에는 俊貞으로 되어 있음)을 원화로 뽑았다. 그런데 교정은 남모를 질투하여 술을 먹여 몰래 북천(北川)으로 데려가 살해하였다. 이 사실이 동요를 통하여 알려져 남모의 시체를 북천에서 찾아내자, 교정도 죽음을 당하고 원화는 곧 폐지되었다.
그 뒤 여러 해를 지나 이번에는 양가의 덕행 있는 사내를 뽑아 명칭을 화랑이라 고치고 처음으로 설원랑(薛原郎)을 받드니 이것이 화랑의 시초이다. 이때부터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선행을 일삼으니 오상(五常)·육예(六藝)·삼사(三師)·육정(六正)이 널리 행해졌다.
김대문(金大問)의 『화랑세기(花郎世紀)』에는 어진 재상과 충성된 신하가 모두 화랑에서 나오고, 뛰어난 장수와 용감한 군사도 여기에서 생겨났다고 하였으며, 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鸞郎碑)」 서문에도 현묘의 도, 풍류의 도라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