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0년(숙종 36) 제작. 1989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높이 86cm. 이 종은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18세기 초반부터 많은 수의 범종을 제작한 사장(私匠) 김성원(金成元)이 옥천사종(玉泉寺鐘)보다 2년 뒤인 1710년에 만든 종이다. 명문에 따르면, 원래는 담양 추월산(秋月山)의 만수사종(萬壽寺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김성원은 실상사종(實相寺鐘, 1694년)을 제작한 김상립(金尙立)의 아들로서 선암사종루종(仙巖寺鐘樓鐘, 1700년)까지는 형제들과 함께 제작에 참여하나 옥천사종부터 독립된 수장(首匠)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 종은 옥천사종과 마찬가지로 종의 상부에는 몸이 엉킨 두 마리의 용으로 용뉴(龍鈕)를 만들고, 양쪽으로 직각을 이루며 뻗은 다리에는 높게 들려진 발톱이 천판(天板)을 누르고 있는 모습이다. 종신(鐘身)과 천판이 맞닿은 곳에 한 줄의 융기선이 돌려지고 그와 바짝 붙어 상대(上帶) 없이 ‘唵(옴)’자로 구성된 원권범자문(圓圈梵字文)을 둥글게 둘러넣었다.
종신 중앙부까지 내려온 네 방향의 연곽(蓮廓)은 김성원 특유의 빗살형 연곽대와 그 내부에 마치 별처럼 도식화된 원형 연화좌(蓮花座) 위에 十자형 홈을 판 연뢰(蓮蕾)가 얕게 돌기되었다. 연곽과 연곽 사이마다 원형 두광을 두른 합장형의 보살입상이 1구씩 부조되었는데, 옥천사종과 달리 구름 위에 표현되었다.
또한 한쪽 보살상과 연곽 사이에‘主上三殿下(주상삼전하)’라는 명문판을, 다시 종신의 하부면을 돌아가며 별도의 명문판을 두어 주조와 관계된 인명을 돋을새김하였다. 이 아랫부분에는 아무 문양이 없으나 1954년 원효사 대웅전을 중수할 당시의 시주자 이름이 추각(追刻)되었다.
선암사종에 표현된 화려한 연곽과 커다란 위패형(位牌形) 장식이 생략되고 옥천사종과 양식상 거의 비슷한 김성원 고유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옥천사종에 비하여 그 크기는 커진 반면, 범자문은 오히려 도식적으로 표현되는 등 아직까지 완숙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