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보성관(普成館)에서 간행하였다. 개화기 신소설 계통의 계몽적인 작품이며, 국한문혼용체로 되어 있다. 순수한글본으로는 노익형책사(盧益亨冊肆)에서 주시경(周時經)에 의하여 1907년에 간행되었으며, 이상익(李相益) 번역의 한글본이 1907년에 간행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월남의 멸망이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한 번역자나 당시 지식인의 비판적 태도에서 간행된 것이다. 또한, 제국주의 확대의 위협 앞에 놓여 있는 당시 조선의 상태를 비판하고 계몽하려는 의도에서 간행된 것이다. 이 책은 1909년 출판법에 의하여 치안상의 이유로 금서 처분되었다.
월남 망명객 소남자 술(述), 양계초 찬(纂)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부록으로 상해신민총보사사원편(上海新民叢報社社員編)의 「월법양국교섭(越法兩國交涉)」·「멸국신법론(滅國新法論)」·「일본의 조선」·「월남제독유영복격문(越南提督劉永福檄文)」 등 양계초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부록을 제외한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일종의 도입부로 망명지 일본에서 해후한 양계초와 소남자가 의기투합하여 우국의 열변을 교환하는데, 이를 양계초가 들은 대로 기록한 것이다. 소남자가 지은 것은 둘째 부분이다.
이 부분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은 월남망국기이며 그 내용은 월남이 중국으로부터 968년에 독립한 이후 최후의 왕조인 완조(阮朝)가 프랑스 보호국으로 전락하기까지의 약사로, 중점은 프랑스 침략사에 있다.
제2장은 애국지사들의 소전(小傳)으로 1885년 근왕운동 때 활약한 지사들의 약전이다. 제3장은 보호국으로 떨어진 월남인의 고통을 서술한 것으로, 세금에 의한 착취와 프랑스의 정보정치·교육·언론정책 등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셋째 부분은 월남의 장래에 대하여 소남자와 양계초가 대화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월남의 미래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는 판이하여, 양계초는 비관적인 데 비하여 소남자는 희망적이라는 차이를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