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의 각종 행사가 있을 때 이용된다. 대개 방형의 넓은 단(壇)으로, 그 위에 지붕이나 다른 시설을 하지 않는다. 월견대(月見臺) 즉 달을 바라보는 대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월대는 궁궐에서의 하례(賀禮) · 가례(嘉禮)와 같은 큰 행사 때 사람들이 올라서서 행사에 참여하는 데 이용되며 제례(祭禮) 때에도 이용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전의 월대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우며 조선시대 각 궁궐의 외정전(外正殿) 및 내정전(內正殿)의 앞, 그리고 종묘(宗廟) 정전 및 영녕전(永寧殿)의 앞에서 그 실례를 볼 수 있다.
월대는 공통적으로 건물의 전면(前面)에 놓이며 대개 장방형으로 그 높이는 약 1m 전후이다. 때로는 2단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있고, 장대석(長臺石)을 가지런히 쌓아 올려 벽면을 구성하고 상부는 전(磚)이나 박석(薄石 : 넓고 얇게 뜬 돌)을 깔며 모서리에 향로 · 드므(방화수를 담는 용기)를 올려놓기도 한다.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의 월대는 상하 2중으로 구성되었으며, 근정전 건물의 동서남 3면에 걸쳐 마련되었는데, 특히 남쪽의 정면 계단에는 상하에 각각 봉황새를 새긴 답도(踏道)를 두고 층계석에도 당초무늬를 새겼다. 또한, 상하 각 월대의 가장자리에는 돌난간을 사방에 두르고 난간기둥 머리에는 십이지(十二支)에 해당하는 짐승조각을 새기었다.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근정전의 월대에는 정초나 동지를 맞아 문무백관이 왕에게 하례를 올릴 때 종친(宗親)과 시신(侍臣), 그리고 악공(樂工)이 전면 월대의 위아래에 자리잡고 좌우 측면의 월대에는 수직하는 군사가 호위하도록 정하고 있다.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의 월대는 내정전의 월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곳은 주로 왕대비를 위한 하례나 가례 때에 이용되던 곳이다. 따라서 그 규모나 형식은 작고 간소하다. <동궐도 東闕圖>에 묘사된 바로는 평상시에 대조전 월대에는 장벽(帳壁)을 둘러 시선을 차단하도록 하였다. 종묘 정전의 월대는 조선시대의 월대 가운데 가장 장대(壯大)한 것으로 꼽힌다.
종묘 정전은 본래 정면 7칸으로 지어졌지만 봉안해야 할 역대 임금의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도 옆으로 계속 증축하게 되어 마지막에는 19칸의 긴 건물이 되었는데 이에 따라 건물 앞의 월대 역시 규모가 확장되어 장대한 규모로 되었다. 상하 2중으로 구성되었으며 바닥에는 전면에 박석이 치밀하게 깔려 종묘 정전의 엄숙한 건축구성과 함께 일대 장관을 이룬다.
이 월대에서는 제례가 거행될 때 이른바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으로 알려진 <보태평 保太平>과 <정대업 定大業>의 음악이 연주되고 춤이 벌어지는데 여기에는 각종 악공과 무인(舞人) 들이 동원되어 월대를 가득 메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