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月川)조목(趙穆, 1524∼1606) 선생이 1539년(중종 34)에 건립하여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던 곳으로 현판은 퇴계(退溪)이황(李愰) 선생이 썼다.
조목선생은 퇴계(退溪)선생의 제자로 1552년(명종 7)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갔고, 여러 관직을 거쳐 공조참판(工曹參判)에 이르렀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모집하였고, 동생과 두 아들로 더불어 망우당곽재우(郭再祐)와 합세하여 국난극복에 앞장섰으며 후일 퇴계 이황선생을 주향(主享)으로 하는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서당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자형 목조 단층 와가로 중앙에는 2칸의 마루를 두고 좌우에 통간방(通間房)을 배치한 홑처마집이다. 1982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