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기계(杞溪). 호는 백거(白蕖). 유만주의 자세한 행적과 가족관계는 미상이다.
1882년(고종 19)에 진사과에 장원급제하여 그 해에 학행(學行)을 인정받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제수되었다.
이어 다음 해에 교육기관의 진흥(振興)을 통한 인재의 양성과 문약(文弱)한 정치를 지양하고 무관(武官)을 증설(增設)하기 위한 방편으로 무예(武藝)를 시험하여 선발된 자들을 채용할 것을 골자로 하는 상소를 올렸다.
한편 김학진(金鶴鎭)·김윤식(金允植)·남정철(南廷哲)·심기택(沈琦澤)·윤수오(尹秀五) 등과 폭넓은 교유를 통해 개화기(開化期)를 맞이한 국가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기술(技術)과 선진문물의 유입(流入)을 긍정적으로 인식하였으나, 정신적인 토대는 전통사상에 입각하여 척사(斥邪) 사상을 견지하였다. 1894년 특명으로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에 제수되었으며, 저서로는 『백거시초(白蕖詩抄)』 4권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