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문숙(文叔). 공주 출신. 부사 유용(柳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통제사 유형(柳珩)이다. 아버지는 익위(翊衛) 유충걸(柳忠傑)이며, 어머니는 직장(直長) 이원영(李元英)의 딸이다.
1648년(인조 26)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고 여러 벼슬을 거쳤다. 길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수로를 파서 농사에 도움을 주어, 백성들의 신뢰를 받았다. 1664년(현종 5) 한성부좌윤을 거쳐, 1672년 함경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이 때에 정령(政令)을 엄명히 하고 기강을 확립시키려 하였으나, 백성들이 이를 매우 불편하게 여겼고, 관찰사 또한 유병연의 죄를 거짓으로 꾸며 보고하여 중형을 받게 되었다. 대장 신여철(申汝哲)이 유병연의 강직함과 청렴 공명함을 증언하고 변호하여 파직에 그쳤다.
그 뒤 다시 부총관으로 임명되어 포도대장·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경기통어사를 지내고 죽으니 형조판서에 추증하고, 경신환국에 공이 있다고 하여 보사원종공신(保社原從功臣) 2등에 추가로 책록하였다. 사람됨이 견실하고 신중하였으며 여러 고을에 나갔으면서도 어디에서든 재화를 취하는 일이 없었고 일생을 청빈하게 살았다.
송시열이 귀양갔을 때 허적(許積)·윤휴(尹鑴) 등이 사형을 주청하자, 유병연은 목숨을 걸고 앞장 서서 동지들을 이끌고 소문(疏文)으로 극간하여 구제하려다가 국왕이 윤휴 등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만두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