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서성(瑞城: 지금의 충청남도 서산) 출신. 1390년(공양왕 2)에 밀직부사로서 노왕(魯王)의 상(喪)에 진위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그 뒤 한양부윤이 되었다.
1391년(공양왕 3)에 앞서 진위사로서 명나라에 갔을 때 사사로이 방물을 매매한 행위가 드러나 탄핵을 받고 삭직, 남원으로 유배되었다. 1392년 개국공신 3등에 책록되었으며, 중추원부사를 거쳐 서해도관찰사가 되고, 이어 서성군(瑞城君)에 책봉되었다.
1396년(태조 5)에 유원정의 가비(家婢)를 살해한 갑사(甲士) 이부개(李夫介)를 가혹하게 처벌하려다가 탄핵을 받았으나, 공신인 점이 고려되어 사면되었다. 1398년에 사위인 사헌잡단(司憲雜端) 전시(田時)가 왕실에 대하여 불경한 말을 한 데 연루되어 죄를 받게 되었으나, 역시 공신의 예우로 사면되었다.
문재(文才)도 무재(武才)도 없는 인물이었으나 정승 조준(趙浚)과 친하였으며, 조준의 천거로 높은 벼슬을 지내고 개국공신이 되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