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출산기」는 한문 필사본으로 『남유록(南遊錄)』 속에 수록되어 있다. 『남유록』은 송정희가 나주 목사로 재임했던 1863년(철종 14) 8월부터 1865년(고종 2) 사이에 전라도 각지를 유람하면서 지은 시문을 그의 후손들이 모아 1922년에 편집한 책이다. 1책 44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에는 「유월출산기」 외에도 「유무등산기(遊無等山記)」, 「유백암사기(遊白巖寺記)」, 「유금산사기(遊金山寺記)」, 「유비비정기(遊飛飛亭記)」, 「유해령명람기(遊海靈名籃記)」, 「유보림사기(遊寶林寺記)」, 「유송광사기(遊松廣寺記)」 등의 기행문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유월출산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갑사(道岬寺)에 도착하였다. 거기에는 ‘월출산도갑사(月出山道岬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그 절 안의 천왕문(天王門) 글씨는 세조의 어필(御筆)이라고 말하였다. 구림(鳩林)을 지나서 상견성암(上見性庵)으로 가기 위하여 조금 앞으로 나아가니 오른쪽 산기슭에 조그만 암자가 있었다. 그 밑에는 물이 돌다가 두어 길 밑에 있는 돌로 떨어진다고 하였다. 거기에서 수십 보를 가니 큰 비석 하나가 있는데, 이경석(李景奭)의 변려문(騈儷文)으로 된 도선(道詵)의 사적을 쓴 글이다.
이 월출산의 산마루는 순전히 돌로 되어 있는데 마치 죽순이 돋아나고 옥을 깎아 세워 놓은 듯하여 신선과 부처가 돌로 변화한 것 같기도 하고, 용과 뱀이 앉아 있는 것 같아서 무어라고 형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대개 이 산은 동북쪽으로 둘려 있고, 또 누대가 층층으로 서 있으며 성곽이 둘려 있는 것만 같다고 한다. 또, 가는 듯하다가 돌아오고 일어서려 하다가 드러누워 돌고 싸기를 30여 리나 우뚝 서서 큰 돌 두 떨기가 되었다. 그 높이가 수십여 길이나 되고 너비는 수십 보나 되는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고 감탄하였다.
천왕봉(天王峰)은 몹시 험준하고 돌의 형세도 가파르고 위태롭다. 그 산마루는 멀고 아득한데 바람의 위세가 점점 사나워지고 길도 더욱 험하여 걷기만 하면 그대로 자빠질 정도이다. 하는 수 없이 서운함을 억제하고 저자는 그대로 돌아서고 만다.
작자가 직접 월출산을 유람하며 관찰한 경치의 묘사가 뛰어나다. 그뿐만 아니라 월출산의 지형이나 유적, 그리고 유래 등을 간단명료하게 기록함으로써 그 주변의 핵심적인 정보를 서술하고 있다.
이 기행문은 분량은 짧지만 문장이 유려하다. 장황한 설명은 없으나 월출산을 본 요령이 소개되어 있어서 한문 수필로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