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月出山)에 자리한 천년 교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통일신라시대 말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道詵)이 창건했는데, 원래는 문수사(文殊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도선의 어머니 최씨(崔氏)가 빨래를 하다가 물 위에 떠내려 오는 참외를 먹고 도선을 잉태하여 낳았으나 바로 숲속에 버렸다. 그러자 비둘기들이 날아들어 도선을 날개로 감싸고 먹이를 물어다가 먹여 길러 최씨가 문수사 주지에게 도선을 맡기며 출가시켰다. 이후 도선이 문수사 터에 도갑사(道岬寺)를 창건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도갑사의 역사와 실상을 알려주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미륵전 안에 봉안된 「석조 여래 좌상」이 고려 중기에 조성되었고, 대웅보전 앞의 5층 석탑은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인 1456년(세조 2)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고승 신미(信眉)와 도갑사에서 출가한 수미(守眉)가 중창하여 966칸에 달하는 거찰로 거듭났고, 현존하는 해탈문도 1473년(성종 4)에 중건되었다. 당시 수미가 도갑사에 돌아와서 머무는 동안 세조의 후원으로 중창 불사가 생겨났고 문도 홍월(洪月)이 공사를 주관했다고 한다. 수미는 1458년 왕명으로 해인사의 대장경 50부를 인출했고, 『월인석보(月印釋譜』) 간행 사업에도 참여하는 등 신미와 함께 세조 시대 불교계를 이끈 인물이었다.
현존하는 「수미왕사비」는 도갑사 주지 청신(淸信)이 주도하여 1633년(인조 11)에 세웠는데, 묘각(妙覺)화상 수미가 선종의 판사(判事)를 역임한 사실과 세조의 왕사(王師)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또 「도선국사 · 수미선사비」는 특이하게도 두 사람의 행적을 하나의 비에 넣은 것으로 이경석(李景奭), 정두경(鄭斗卿) 등이 썼고 1636년(인조 14) 비 건립을 시작하여 1653년(효종 4)에 완성되었다. 도갑사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전란의 피해를 크게 입지 않았지만 화재는 피할 수는 없어서 1977년에 명부전과 해탈문을 제외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1981년부터 대웅보전을 시작으로 복원이 이루어졌다. 현존하는 전각은 대웅보전 · 명부전 · 미륵전 · 국사전 · 해탈문 · 일주문 등이 있다.
도갑사 해탈문은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고, 미륵전 「석조 여래 좌상」은 1963년에 보물로 정해졌다. 1992년에는 「목조 문수 · 보현동자상」이 보물로 선정되었고 이후 「도선국사 · 수미선사비」, 오층석탑도 보물이 되었다. 전라남도 유형 문화유산인 오층석탑과 삼층석탑, 석조 등 많은 문화유산이 전해지고 있다.